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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쥰세이가 아오이에게
    Impressive Thing/Book 2009. 7. 1. 12:06

    아오이
    갑자기 편지 쓰는 거 용서해
    이게 너에게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무척 긴 편지가 되리란 것도
    난 지금 우메가오카의 아파트에 있어
    피렌체에서 도망쳐서...
    그래, 도망쳐서
    막 돌아온 참이지
    오늘 오랜만에 시모키타에 다녀왔어

    널 처음 만났던 곳...
    그 거리의 그 가게에서
    우린 그렇게 스쳐 지나갔지
    말 한마디 못 나누고...
    한데 어떻게 기억하냐고?
    다음에 만났을 때 넌 의아해했지만
    난 그 미술관에 자주 갔기 때문에
    안내 창구에 새로운 아가씨가 들어왔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녀가 아르바이트라는 것도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 아이는 항상 혼자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어
    혼자 있는 걸 냉정하게 견뎌내는 여자
    난 널 무척이나 강한 애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지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해서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지
    그때 우린 둘 다 19살
    너무 어렸지
    하지만 왜 그렇게 두근거렸는지...
    처음으로 걸려온 네 전화
    첫 데이트 약속
    만나기로 한 커피숍
    처음으로 함께 본 영화
    난 마음에 드는 음악과 책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네게 소개해줬지
    우린 많은 얘길 나눴어
    네 어렸을 때 얘기
    너의 아버지가 일본인이라
    그래서 네가 아오이 라는 일본이름을 가지게 된 것
    그런 아버지를 일찍 사고로 여의고
    어머니가 재혼하자
    넌 새 가정에 적응 못했다는 것
    줄곧 고독했다는 것
    아버지의 나라를 알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 것
    넌 네가 있을 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어

    네가 내 방에 왔던 그날 밤
    난 네 생각에 잠을 못 이뤘지
    너와 함께 보낸 우리들의 추억은
    영원할 줄 알았어
    하지만 자주 가던 커피숍은
    이미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섰더군
    그 중고 레코드 가게도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그곳에는 이젠 아무것도 없어
    기억나?
    우리들이 좋아하는 장소였지
    대학 기념강당 옆 콘크리트 계단에서
    첼로를 켜던 학생 말야
    늘 같은 곡을 연주했고
    늘 같은 데서 막혔지
    그 학생의 엉터리 첼로에
    우린 미소를 지었어
    첫 키스를 나눈 그 장소에서 들었던 그 곡
    아오이
    난 이제 그 곡명이 기억나질 않아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이야기
    그래, 이젠 다 지나간 과거일 뿐이야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밀라노까지 널 만나러 갔을 때
    점잖지 못한 태도를 취한 자신을
    지금은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
    용서를 바래
    함께 살고 있는 애인에게 안부 전해주고
    건강하게 잘 지내

    어쨌든
    행복하다니 기뻐
    멀리 밀라노의 아오이에게...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쥰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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