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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탑 vol.1Impressive Thing/Book 2010. 9. 15. 09:45
생각이 그에 미치자 자이젠 고로오는 아즈마가 퇴직하는 내년 봄까지 1년간이 자기에게 있어서 가장 치밀한 계산과 용의주도한 행동 여하에 따라서 스스로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외과의 조교수로서 나 정도의 실력 소유자가 그런 약한 생각을 어째서 품는 거냐.
여유와 위엄, 그것은 아즈마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어떠한 경우에도 국립대학 교수로서의 여유와 위엄을 잃지 않는 것이 그의 생활신조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언제부터인지, 오다의 송별회이어야 할 주석이 술과 여자의 이야기로 되어 버리고 있었다. 오늘뿐 아니라 연구원의 모임 때는 그런, 누구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부담 없는 화제를 고르는 것이 이 세계의 상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 자기편이 되었다가 또 언제 적이 될지도 모르는 복잡한 인간관계가 엉켜 있는 이 세계를 교묘하게 헤엄쳐나가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어쨌든 제멋대로 생긴 여자는 사치하도록 내버려두고 달콤한 말만 해주면 그저 좋아하거든. 사내는 바람을 피워야 위대한 인물이 되는 법이야.
그런 염려는 필요 없네. 내가 보고 위암 의진이라고 했으니까, 대략 위암이 틀림없어. 자네같이 뭐든 검사, 검사하면서 검사에만 의존하는 것은 경험이 얕은 신참 임상의가 하는 짓이야. 경험자는 오랜 경험으로 매번, 의당 정해진 같은 검사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필요한 최소한의 검사만 지시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영감을 활용해야 되는 거야. 이것이 없으면 자기 구실을 할 수 없는 거네.
너는 변함없이 요령이 나쁜 녀석이야. 그럴 때에는 그렇게 명백한 표현을 하지 말고 완곡하게 네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으로 유도해 가도록 해야지. 만일 네 진단이 잘못됐다면, 그때 어떻게 할 거야? 서툰 짓이 되는 거지.
그것이 운을 하늘에 맡긴 승부라는 거야. 보통의 룰 같으면 제일 뒤로 미뤄야 할 일이라도 좋은 기회가 잡히면 거기서부터 먼저 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어? 어떻든 아무리 뒤로 미루어야 할 큰 인물이라 할지라도 뭔가 그런 기회가 없으면 노릴 수 없거든. 기회라면 지금이 제일 재미있는 기회라고 나는 보고 있어.
자네는 원래 일 솜씨가 있는 사람이니까 나머지는 인덕, 인덕이 문제라구.
아니, 이건 나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야.
그렇다면 왜 저한테 일부러 후나오 교수의 추천장을 보이셨죠? 저한테 보였을 때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신 게 아녜요? 그런데도 당신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제 입을 통해 말하게 해서 책임을 돌리고 양심의 가책을 덜 받으시겠다 그거죠? 그렇다면 좋아요. 좋으니까 제가 권하는 사람으로 결정해요.
인사라는 것이 필경 이런 하찮은 일로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야 이번 일뿐이 아닐 테지. 그 밖의 여러 인사에도 크고 작고 간에 이런 요소를 가지고 있어, 인간이 인간의 능력을 사정하고 하나의 인간의 생애를 정하는 인사 그 자체가 알고 보면 당연한 것만은 아니지. 참혹하고 그리고 교활한 인간희극이야......
대사를 판가름할 때는 우유부단해서는 안 되지.
학문이란 것은 진리라고 생각되던 것도 10년 경과하면 진리가 아닐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교수로서의 기량이라든가 격이라는 것은 교수가 되면 그 뒤로 자연히 구비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교수로서의 적, 부적의 문제가 되지 않아요.
눈에는 눈, 독에는 독으로 제압하면 되는 거예요. 이번에는 이쪽에서 연극을 해야 할 차례예요.'Impressive Thing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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