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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vol.7

뜅굴이 2010. 11. 26. 17:51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돈을 쓰지 마라, 속이 빈 자가 겉치장이 요란하다, 가난은 견디기 고통스럽지만 정복되지 않는 가난은 없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고, 독재는 봉기를 부른다 

 

군대를 앞세운 국가적 폭력 앞에서 개개인들은 얼마나 허약한가. 그 허약함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다수가 만들어내는 침묵이었다. 그러나 개개인만 침묵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문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침묵하고 잇었다. 신문들의 침묵은 대중들의 침묵을 낳고, 그 침묵은 독재가 거침없이 뿌리를 뻗어가게 해주고 있었다.

 

단감으로 순천 단감을 친다드라만 우리 강진 단감 못 당헌다. 강진 단감이사 햇발 더 많이 받고 잡짜름헌 갯바람할라 쐼서 익은 것잉께 살이 더 사근사근허고 단물이 많애 맛이 훨썩 진허고 깊으제, 항.

 

회사들이 자꾸 생겨나고 기존하는 회사들도 규모가 확대되고 있으니까 상대 졸업하면 취직이야 용이하겠지. 그렇지만 좀더 좋은 기업으로 진출하려면 영어 실력들을 길러야 해. 우리나라는 수출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고,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데는 영어가 기본 무기니까.

 

그러길래 이 지구상에 영어가 마흔다섯 가지 정도 된다는 말이 있지. 말이 다른 각 나라마다 자기네 식으로 영어 발음을 하게 되는 거야. 이런 일화가 있어. 2차대전 후에 일본의 어떤 영어 학자가 일본의 국제화를 위해서 공용어를 영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어. 그 돌발적인 주장은 패전의 열등감에 빠져 있던 일본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지. 그런데 뜻밖에도 그 사람은 미국의 초청을 받았어. 뭐, 뜻밖일 것도 없는 일이지. 그때 패전 일본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스스로 그런 주장을 하고 나선 학자를 환영할 수밖에. 그 학자는 난생처음 미국에 가서 환대를 받으며 미국의 저명인사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게 되었지. 물론 영어로 말야. 강연을 다 마치고 났는데 청중들이 하는 말이, '일본만도 우리말하고 좀 비슷한 데가 있는데 그래', '응, 그런 것 같기도 하군' 이랬던 거야. 그 학자는 일본으로 돌아와 다시는 그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거야. 다른 나라 말을 하는 데는 다 그런 한계가 있는 거니까 최선을 다해서 노력은 하되 그들과 똑같이 되지 않는다고 고민할 건 없어. 똑같아지려고 하는 건 망상이고, 망상에 매달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

 

자신의 태도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미적미적 따라가는 이거야말로 '한국사람들의 고질병'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습쓰레하게 웃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순간적으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라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독일 간호원들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한국 간호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서독 간호원들이 한국 간호원들의 돈에 매달린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의 생활은 늘 정서적으로 여유롭고 풍족했다. 그들은 하루에 여덟 시간만 일할 뿐 야근도 피하는 형편이라 아르바이트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들은 휴식을 충분히 즐겼고, 주말이면 거의 어김없이 가까운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낫다. 그리고 긴 연중휴가 때에는 국경을 넘어 프랑스며 이태리, 스페인 같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고는 했다. 그들은 그 여행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없이 행복해 하고, 다음 여행지를 꼽아보고는 했다.
 그런 그들은 한국 간호원들이 집안 식구들을 위해서 그렇게 혹독한 노동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살지 않고 여자 혼자의 힘으로 집안 식구 모두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집안이 가난하면 식구들 모두가 그 책임을 지고 고생해야 옳지 왜 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며 그 짐을 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간호원들이 아름답게 생각하는 자기희생을 서독 간호원들은 논리에 맞지 않는 가족들의 무책임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회복지제도가 전혀 없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서독 간호원들은 어떻게 그런 나라가 있을 수 있느냐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 사이에는 말로 이해될 수 없는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겁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그게 바로 겁이없는 거라구.

 

과로는 겹치면 탈을 부르는 병이었지만 피하면 풀리게 마련인 피곤일 뿐이었다.

 

순수한 우정? 그거야말로 배반자가 읊조리는 신의였고, 반역자가 내세우는 충성이었다.

 

일단 달리기 시작한 기차는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고, 충고란 그동안 있어 온 우정에 대한 배신이라고 하잖아?

 

하늘을 나는 새가 허공에 그 발자국을 새기지 못하듯이 인간사 그 무엇이 영겁 속에 남음이 있으랴.

 

기운 내라구 인생이란 마지막 웃는 자가 승자라구.

 

서울은 참 묘한 곳이야. 출세의 도시이기도 하고 절망의 됫이기도 해. 무작정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발휘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잔인한 도시이기도 하지. 조선 500년에서 지금까지 출세해 보겠다고 서울로 밀려들었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저 한강에 눈물을 떨구며 발길을 돌린 젊은이들이 그 얼마나 많겠는가. 그 눈물을 다 모아놓으면 또 하나 한강이 될지도 모르지.

 

사실 인생이란 게 별게 아니긴 한데 고비고비 잘 풀리지 않으면 그것 참 팍팍한 모래밭인 거라. 죽고 나면 다 헛것인데 산 목숨 하루하루는 심각하고 절실하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숱한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제 나름으로 많은 말들을 했는데 정작 정답은 없는 게 인생이거든. 사는 것, 그것에 열중할 수밖에 없어.

 

키엘케고르가 말했지 아마? 인생은 어차피 후회다. 결혼하라,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후회할 것이다. 출세해 보라, 후회할 것이다. 출세를 외면하라, 후회할 것이다. 인생이 이런 거니까 다 자기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지.

 

 거의가 단층인 주택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5층 높이의 집이란 끔찍하게 높은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다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층층이 포개져 산다는 것은 영 고약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사람들은 예로부터 머리를 중시해 어른이 누운 머리맡에는 아무것도 놓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는 아이들의 머리 위쪽으로는 부모도 걸어다니는 것을 피했다. 옛사람들이 갓을 애지중지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것은 갓이 귀한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머리에 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머리 위에 남들이 층층이 겹겹이 올라앉아 있으니그게고약스럽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께끄름하고 걸쩍지근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밥을 먹고, 밤이면 그 일을 하고, 소변을 보고, 대변을 보고......, 서로서로의 머리 위에다가 그런 짓들을 해가며 몇 겹으로 포개져 살아야 하는 아파트라는 구조는 아주 비인간적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닭장집'이었다. 오로지 알을 낳아야 하는 임무로 최소한의 생존을 층층의 비좁은 공간에서 유지하고 있는 양계장의 닭들에 비유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그런 거부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입식 부엌과 수세식 변소의 편리함과 깨끗함, 난방의 따스함이 단독주택은 댈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주부들을 휘어잡음으로써 그 입지는 완전히 반전되고 말았다. 아파트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아파트들은 대형 단지를 이루기 시작했고, 그 인구 밀집촌은 '아파트촌'이라는 신종 이름을 얻게 되었다.

 

취직을 해서 첫 월급으로 어머니의 빨간 내복을 사드려야 전정이 잘 풀린다.

 

세상이란 필요한 것은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생겨난다.

 

패전 직후 일본에서는 선진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여러 분야에 걸쳐 미국에 기술자들을 연수를 보냈다. 그런데 미국 기술자들은 자기네 일만 할 뿐 냉담하리만큼 아무 기술도 가르쳐주지 않앗다. 일본 연수생들은 미국 기술자들의 등뒤에서 그저 눈치껏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익혔다. 그리고 그들은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면 기계와 기술에 대하여 보고 느긴 것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또한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공장에 출근했다. 그리고 공장과 기계들은 깨끗이 청소하고, 작업 준비까지 다 해놓았다. 미국사람들은 처음에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연수생들은 날마다 그 일을 되풀이 했다. 그러자 한 달이 못 되어 미국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절해졌고, 기술을 가르쳐주기 시작했고, 자기들만 보던 도면을 함께 보았고, 마침내는 잊어버린 척 캐비닛을 열어놓고 식당에 가거나 퇴근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6개월이나 1년 만에 돌아온 일본 연수생들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자가 되어 있었다. 여러분의 어깨에는 이 나라의 장래가 걸려 있다. 우리는 이제 그만 가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지름길이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신기술을 샅샅이 배워 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먼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라.

 

회사가 성공하려면 직원들부터 잘 보살펴야 한다.

 

사원복지 잘해서 망하는 회사는 없다.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 - 박태준

 

공적 사회적 임무를 맡은 사람은 사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지식과 실천이 일치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정면으로 맞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상살이는 전쟁이야. 전쟁터에서 총 쏠까 말까 고민해? 이 세상에서는 이 세상의 법칙을 따라야 해. 함께 썩어서 돌지 않으면 결국 굶어죽어. 그렇게 죽는 걸 세상에서는 양심이라고 알아주는 게 아니라 무능하고 병신이라고 비웃어. 그게 우리 사회야.

 

자본주의는 인간을 더럽고 치사하게 만들었고,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