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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 by 로버트 해리스

뜅굴이 2009. 11. 9. 20:20

 오브라이언이 만일 진짜 전투에 참가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싸우는 그런 전투 말이다. 아니,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그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봤다고 했다. 싸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는 걸까? 싸워보지도 못한 전쟁 때문에 그들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난 걸까?

 전쟁이 사라져버림으로써 사람들은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평화 상태가 인간 실존을 위해 당연한 선물이라고 해도말이다. 어쨌든 모든 게 너무나도 하찮아진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지금은 무의미의 시대다. 정치도 무의미하고,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자잘한 문제들뿐이다. 저당, 연금, 간접흡연의 위험... 오, 하느님! 그는 오브라이언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총살이나 폭격을 걱정한 데 반해, 그 자손들은 간접흡연 따위에나 시비 걸고 있다니! 결국 우린 그 정도 존재에 불과한 건가!

 문득 죄의식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전쟁을 원한다고? 적어도 냉전이라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냉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냉전의 종식이 반갑기도 했다. 올바른 쪽이 이겨서 기뻤다. 하지만 냉전의 시대에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위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또 뭔가를 말해줄 수도 있었다. 에, 우리의 신념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건 잘못된 길입니다, 라고 말이다.

 사실 냉전이 끝난 뒤로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스탈린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사냥감을 고르고,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용서할 수 없는 증오를 해소하고, 그리고 침대로 가서 잠드는 것... 이 세상에 그보다 행복한 건 없다고 했지. 행복, 그래. 바로 그거야. 그보다 행복한 건 이세상에 없더군.

 

 

레닌이 이런 말을 했어. '어떤 노력이든 가장 중요한 건 직접 부딪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어떤 일을 해야할지 알 수 있는 법이다.'